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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家 의 무게감.

덕분에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 이야기를 잠시 들려 드릴까 합니다.

할아버지가 양조장을 하셨고 아버지가 가업을 이어 받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에 저도 가업을 이어 받았습니다.
아마도 운명의 끈 같은 것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저를 이 길로 이끈 것 같습니다.
그 때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직원을 5명이나 데리고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라 그냥 되는 일인줄 알았습니다. 막걸리만 팔면 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철없던 시절에 겁도 없이 그냥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3년 후 망했습니다. 시대 상황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민 술이었던 막걸리는 1974년 최고의 출고량을 기록한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에는 맥주에 그 위상을 넘겨주었습니다. 이후 막걸리 시장이 전체적으로 사양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업은 그렇게 실패했습니다. 직원들이 떠나가고 회사도 기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당연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막걸리가 뭐지?
발효는 어떻게 되는 거지?
궁금한 것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발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야 좋은 제품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국산 재료, 로컬푸드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하던 방식, 옛날 전통적인 방식이 진짜였습니다.
그리고는 우연한 기회에 식초로 관심분야가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정성스레 만든 막걸리들이 여름에는 쉽게 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반품받은 막걸리들이 주조장에 쌓였습니다. 버리기 아까워 보관했는데 몇 개월 지나서 맛을 보니 맛과 향이 좋은 식초가 되어있었습니다. 발효가 주는 놀라운 자연의 선물이었습니다. 식초라는 게 원래 그렇게 탄생된다는 걸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초산균이 술의 에틸알콜 성분을 산화시켜서 초산을 만들고 그래서 식초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식초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초기에는 인근지역 횟집에 막걸리 식초를 만들어서 공급했습니다.

2003년부터 연구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부뚜막에서 식초를 만들던 옛날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계속 연구하고 개발했습니다. 2006년에 산도 6~7도의 조미용 쌀 식초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산도 10~16도의 고구마 식초도 만들었습니다.

막걸리 제조 경험에서 축적되었던 미생물 발효에 대한 공부가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발효식초의 번거로운 제조방법도 단순화 했습니다.
맛과 향이 뛰어난 발효식초가 탄생했습니다.
전통발효 식초는 살균 처리를 안 하기 때문에 보관하면 할 수록 자연 숙성이 돼 향과 맛이 특이하고 풍미가 좋았습니다.

혹시 혼자만의 느낌일까 싶어 주변 반응을 살폈습니다. 시큼하고 깊은 맛이 저한테는 너무 좋은데 사람들마다 약간씩 반응이 달랐습니다.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근처 대학교에 성분검사와 영양검사 등을 신청했습니다.

확인결과 식초의 성분과 효능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60여 가지의 효소와 효모가 건강 상태로 살아있었고, 자연 발효된 아세트산을 함유하고 있었습니다. 식초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건강한 음식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식초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3번이나 차지하기도 했던 놀라운 재료입니다. 식초를 먹으면 2시간 이내에 피로가 가시고 탁한 소변이 맑아진자는 연구가 1953년에 있었고 1964년에는 식초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촉진하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완성된 식초에는 적어도 4%의 초산과 소량의 알코올이나 글리세린, 에스테르, 당, 염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음식을 조리할 때 산미를 내는 조미료로 쓰였습니다. 생선이나 육류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도 여러군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변비와 산후통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자 여러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좋은 성분을 어떻게 하면 먹기 쉽고 더 건강하게 즐길 수 있을까?
저의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해남의 쌀과 고구마, 울금, 쑥 등을 조합하여 색 다르고 먹기 쉬운 상품으로 계속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삼색 막걸리가 탄생했습니다.
해남의 쌀과 고구마 그리고 울금을 활용한 응용 상품입니다. 식초 음료도 만들었습니다. 알약과 같은 환의 형태로도 개발했습니다. 긴 기간 동안 더 깊이있게 발효해서 명품 식초인 흑초도 개발했습니다.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온 것 같습니다.
신지식인상! 대한명인! 쌀막걸리 명인!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해야 할 일들은 더 많습니다.
장남인 아들 녀석이 가업을 잇겠다고 술도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외국산 물건이 난무합니다.
디지털이나 소프트웨어적인 일들은 금방 표시가 나고 또 사회적으로도 바로 인정을 해 주는 듯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발효 진행 과정처럼 긴 기간동안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명인이라고 해서 큰 돈이 되거나 사회적인 인정이 바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제 아들 녀석이 부디 이 일을 저보다도 더 잘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막걸리는 예로부터 서민들의 농주였습니다. 일상의 갈증을 풀어주고 허전함을 채워주는 서민들의 친구같은 존재였습니다.조상들의 발효기술과 건강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놀라운 술입니다.
이제 그 발효 기술이 귀하게 재탄생되고 부활해서 다시 여러분 곁에서 사랑받는 친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통 발효 식초 또한 여러분 곁에서 여러분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귀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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